[번역]'호랑이 헌터' 고바야시 쿠니아키 히스토리 -18. 1983년 여름. 타이거 마스크 은퇴 (스포츠 호치)


1983년 8월에 타이거 마스크에서 은퇴한 사야마 사토루



이번에 번역한 프로레슬링 칼럼은 일본의 스포츠 호치 신문에서 연재되는 '호랑이 헌터' 고바야시 쿠니아키 히스토리입니다.


초대 타이거 마스크의 3대 라이벌 중 한 명으로 '호랑이 헌터'라고 불렸던 실력자 고바야시의 프로레슬링 인생을 돌아보는 글로, 오늘은 '18. 1983년 여름. 타이거 마스크 은퇴'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1980년대 전반에 초대 타이거 마스크와 격전을 펼쳐 '호랑이 헌터'라고 불린 고바야시 쿠니아키 (64세)가 2000년 4월 21일에 은퇴한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1972년 10월에 탄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 타이거 마스크와 대립,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미사와 미츠하루의 2대째 타이거 마스크와 대결, 게다가 헤이세이 (*1989년부터 2019년 4월까지의 일본 연호)에는 신일본에서 반 선수회 동맹 '헤이세이 유진군'으로 활약했다.


WEB 호치에서는 '호랑이 헌터' 고바야시 쿠니아키 히스토리'라는 제목으로 기억에 남는 명선수의 레슬러 인생을 더듬어 보는 연재를 펼친다.


제18회는 '타이거 마스크 은퇴'.



1982년 연말. 초슈 리키와 함께 미국으로 간 고바야시 쿠니아키는 뉴욕에서 마사 사이토와 합류해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반기를 드는 '혁명군'을 결성했다. 새로운 군단의 시작은 새해가 밝은 1983년 1월 5일에 코시가야 시 체육관에서 개막한 새해 황금 시리즈였다. 개막 2번째 시합이 된 1월 6인 고라쿠엔 홀에서의 TV 매치는 사카구치 세이지와 팀을 맺고 초슈 & 사이토와 대결한 킬러 칸이 사카구치에게 모반을 일으키고 혁명군에 합류해 세력을 확대했다.


고바야시는 이 날 타이거 마스크가 가진 NWA 세계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다. 가면을 찢은 11월 4일 쿠라마에 국기관 대회 이후 2개월만에 펼쳐진 리매치는 링아웃으로 패했지만, 시청률은 20%를 넘겨 '타이거 마스크 vs 고바야시 쿠니아키'가 신일본의 간판 시합이 되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후 고바야시는 타이거 마스크와 2월 8일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 4월 15일 후쿠야마 시 체육관, 6월 2일 쿠라마에 국기관, 7월 14일 삿포로 나카지마 체육센터 등 5개월 동안 4번 대결했다. 첫 대결이었던 1982년 10월 26일 오사카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9개월 동안 7시합이나 펼쳤고, 이만큼 짧은 기간 동안 계속 치뤄진 싱글매치는 얼마나 '타이거 vs 고바야시'가 팬, TV 방송국, 프로모터에게 니즈가 높았는지를 증명한다.


시합은 2월 8일 오사카에서 처음 핀 폴로 패했고, 후쿠야마는 반칙패, 쿠라마에에서도 핀 폴을 내줬다. 7월 14일 삿포로도 반칙으로 패해 대결한 7시합 중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삿포로가 고바야시에게 있어 타이거 마스크와의 마지막 대결이 되어버렸다. 타이거가 8월 4일, 쿠라마에 국기관에서 테라니시 오사무전을 끝으로 돌연 은퇴를 표명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퇴단한 것이다.


1981년 4월 23일에 충격적인 데뷔를 한 후 겨우 2년 4개월만에 타이거 마스크는 링을 떠났다. 은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대우 등 다양한 불만이 쌓인 결과였다. 은퇴를 표명하기 직전, 고바야시에게 전화가 왔다.



"은퇴할 때 사야마로부터 '그만둘 겁니다'라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때 전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말리진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고바야시는 타이거 마스크를 '사야마'라고 표현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절착탁마해왔던 후배가 호랑이 가면을 쓰고 호적수가 되었고, 둘이서 일본 전국을 열광시키는 명승부를 펼쳤다. 타이거 마스크는 은퇴라는 중대한 일을 '사야마 사토루'로서 고바야시에게 전했다.



"사야마가 은퇴한 건 자신이 원하던 것과 당시의 신일본 링 위의 흐름에 차이가 생겼기 떄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훗날 슈팅을 시작했지만, 사야마는 그것을 하고 싶었기에 은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야마는 은퇴 후 체육관을 개설하고 새로운 격투기의 창설을 위해 움직였다. 1년 후인 1984년 7월에 UWF에 참전해 프로레슬링 복귀를 했지만, 1985년 가을에 퇴단. 그 후에는 격투기 '슈토 협회'를 설립해 1989년부터 프로화 하여 종합 격투기의 기틀을 다졌다.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며 고바야시는 '타이거 마스크'가 은퇴한 이유에 이해하는 마음을 보였다.


고바야시에게 있어 겨우 10개월 동안이었던 타이거 마스크와의 격렬한 싸움. 떠올려보면 지금도 열정이 솟아오른다.



"저와 타이거 마스크가 싸운 건 겨우 1년 정도 뿐이었군요. 그것도 벌써 30년전의 시합인데 지금도 길거리를 걸으면 '그때 봤습니다'라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고, 호랑이 헌터로 계속 불려왔습니다. 그건 저라도 놀랐지만, 그만큼 저와 타이거 마스크의 시합이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시합은 역시 첫 대결인 1982년 10월 26일 오사카였다고 한다.



"추억의 시합은 가장 첫 시합이군요. 제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으니까요. 그때 가면을 찢은 것이 그 후로 이어져 지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타이거 마스크는 고바야시 외에도 다이너마이트 키드, 블랙 타이거라는 라이벌이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는 본 대로 날카로운 면도날 파이터로 어떻게 하면 그런 박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저도 연구했습니다.


블랙 타이거는 이상할 정도로 타고난 스태미너가 있었고, 어떻게해야 저만한 스태미너를 가질 수 있을지 공부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다이너마이트도, 블랙 타이거도 아닌 시합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필사적으로 그 스피드 있는 움직임을 따라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킥도 얼굴에 힘껏 날렸습니다. 그 킥은 다이너마이트에게도, 블랙 타이거에게도 쓰지 않은 강렬한 킥이었습니다."



10개월 동안의 대립에서 타이거 마스크와 대화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싸우던 당시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으니 그가 어떤 생각으로 저와 싸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은퇴한 사야마가 어딘가와의 인터뷰였는지 뭐였는지 잊어버렸지만, 저하고의 시합이 '가장 지쳤다'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쳤다는 건 다이너마이트와 블랙 타이거보다 제가 더 움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기뻤죠."



타이거 마스크 은퇴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 주니어 헤비급에서 새로운 가면 레슬러 '더 코브라'를 탄생시켰다. 정체는 죠지 타카노로, 1983년 11월 3일에 쿠라마에 국기관에서 일본 데뷔를 했다.



"사야마가 은퇴하고 그 후 코브라가 등장했지만 사야마의 대신이 되지 못했죠."



고바야시는 코브라와 1984년 1월 6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처음 대결. 같은 해 2월 9일에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에서 코브라가 가진 NWA 세계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고, 8월 4일 쿠라마에 국기관에서 다시 이 타이틀에 도전해 3번 대결했으나, 전부 결판을 내지 못했다.



"싸워 본 인상 말인가요? 코브라는 보는 대로지 않습니까. 사야마의 후임으로 왔겠지만, 도저히 비교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났습니다. 본인은 열심히 자신의 실력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겠지만 안됐었죠. 헛돌아서 솔직히 말해 기대에 어긋났습니다."



1984년이 되자 주니어 헤비급 전선에 신예인 다카다 노부히코와 야마자키 카즈오가 대두했다.



"그 당시의 다카다는 아직 젊었으니까요. 막 나왔으니 저도 그 존재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누구와 대결해도 제 마음엔 사야마가 은퇴한 상실감 밖에 없었습니다."



최대의 라이벌을 잃은 고바야시는 1984년 가을에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퇴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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