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프로레슬러 세계유산 -36. 테리 펑크

일본의 홈페이지 '리얼 라이브'에서 연재 중인 '프로레슬링 세계유산(プロレスラー世界遺産)'의 36번째 글입니다.



과거의 명 선수, 현역 선수 중 주목 선수들을 돌아보는 연재 칼럼인데, 36번째 시간에선 거듭된 은퇴 번복을 하긴 했지만 과거에는 정통파로, 나이를 먹은 후에는 하드코어 스타일로 시합을 펼치고 있는 테리 펑크에 대해 다뤘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일본 프로레슬링 사상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한 외국인 레슬러 중 1명인 테리 펑크.


친형인 도리 펑크 Jr.와의 태그팀 '더 펑크스'로서의 활약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싱글 매치에서도 인상 깊은 파이트들을 남겼다.


또, 인터넷도 없어 해외에서의 시합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일본에서 큰 인기를 자랑했던 테리가 실은 미국에선 악역 취급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란 올드 팬들은 많을 것이다.



"해외 프로레슬링 전문지에 실린 레슬러 랭킹에서 테리는 악역 부문에서 항상 상위에 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일본과 미국의 프로레슬링계 사정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고 복잡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그렇다고는 해도 지역과 장면에 따라 선악이 다른 일 자체는 결코 이상하지 않다.


예를들어 트럼프 대통령도 안좋은 일에 대해서도 지지자 집회에서라면 엄청난 갈채를 받는 히어로 취급이지만, 민주당 지지자가 보기엔 희대의 대악당이다.



"테리로서도 미국에서 압둘라 더 부쳐같이 흉기 공격을 했던게 아닙니다. 그 캐릭터는 미국 남부 빈곤층 출신의, 좋게 말하면 활기 넘치는 형씨, 안좋게 말하면 난폭한 불량배로, 난폭한 파이트 스타일은 일본과 미국에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홈인 텍사스 등에서는 인기 선수였지만, 흑인과 멕시코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적대시되었다는 거죠." (프로레슬링 라이터)






일본에 있어서는 더 펑크스로서의 활약이 선역 인기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제멋대로인 동생과 냉정침착한 형이라는 조합이 절품이었고, 만약 테리 혼자였다면 테드 디비아시라던가 밥 오턴 Jr. 정도의 평가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도리와 테리를 함께 초빙한 것은 일본 프로레슬링 시절이었지만, 자이언트 바바는 부쳐라는 악역을 이들의 상대로 싸우게 했다. 바바의 매치 메이커로서의 수완이 전에 없을 테리의 인기를 만들어 냈다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싱글 레슬러로서는 오히려 1990년대 이후가 인상 깊다는 팬도 있을 것이다.


'정신나간 중년'이란 별명으로 WCW와 하드코어 단체 ECW에서 크게 날뛰고 WWF에서는 '체인소우 찰리'라는 링네임으로 참전.


일본에서도 FMW에서 오니타 아츠시와 전류폭파 데스매치로 싸웠다.



*점보 츠루타와의 시합에서 보여준 세계 챔피언의 역량







그럼 그 이전의 테리가 싱글 레슬러로서 안좋았느냐고 한다면 물론 그렇지 않다.


1975년 12월에 잭 브리스코를 물리치고 NWA 세계 챔피언 (제51대) 에 올랐고, 1977년 2월에 할리 레이스에게 패할 때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미국 각지에서 방어를 계속한 명실공히 일류 레슬러였다.


그런 싱글 레슬러로서의 테리의 실력을 보여준 것이 일본에서 유일하게 치룬 NWA 타이틀 방어전. 1976년 6월에 쿠라마에 국기관에서 펼친 점보 츠루타와의 방어전일 것이다.






'츠루타 시련의 10번 승부' 중 제3전으로 치뤄진 이 시합. 츠루타를 응원하기 위해 관객석에는 토미즈 치어 걸즈가 약 30명이 응원을 펼쳤고, 모교인 츄오 대학의 응원단이 337 박수 리즘으로 큰 북을 두드리며 츠루타 콜을 보냈다.





그런 완전한 어웨이 분위기에서 테리는 '마구 공격하는 공격 일변도의 챔피언'이라고 자칭했던대로 락 업에서 목 잡기와 그라운드에서의 팔 꺾기 등 항상 먼저 공격을 펼치며 시합을 진행해나갔다.


대명사격인 왼손 펀치를 쓰는 일도 없이 어디까지나 레슬링 기술로 츠루타를 몰아붙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세계 챔피언에 어울렸다.





1번째판은 한순간의 틈을 노린 회전 핀 폴로 3카운트를 내줬지만, 2번째판에 들어서자 파일 드라이버와 넥 브레이커, 장외에서의 드롭킥으로 공세를 펼치고, 츠루타가 괴로워하던 나머지 코브라 트위스트에 들어가려던 것을 테리는 오리지널 롤링 크레이들 홀드로 붙잡아 핀 폴을 따냈다.



그리고 맞이한 3번째판은 츠루타의 대반격. 일찍부터 코브라 트위스트로 붙잡아 조이고, 사이드 스플렉스, 더블 암 스플렉스, 져먼 스플렉스가 무너진 듯한 백드롭으로 거듭 큰 기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테리는 그런 기세를 탄 츠루타의 목을 로프에 부딫히게 하고 고통스러워 할 때 핀 폴.


현지 히어로에게 활약상을 보여주게 하고 우연인듯 승리한다는 당시 NWA 챔피언 스타일의 방식으로 벨트를 지켜내 보인 것이다.



"이 시합에 감명을 받은 텐류 겐이치로가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테리의 숨겨진 명승부입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또, 이 시합에서 테리가 입었던 성조기 팬츠는 당시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한 것이었다.


이것을 선물받은 츠루타가 그 후 성조기 팬츠를 입고 시합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도 기념할만한 시합이었다.




*테리 펑크


1944년 6월 30일, 미국 인디애나 주 출신.

신장 188cm, 체중 118Kg.

특기 기술: 넉클 패트, 스피닝 토 홀드, 텍사스 클로버 홀드






덧글

  • 강상 2018/11/11 15:14 # 삭제 답글

    은퇴를 너무 번복하는 점(!)만을 뺀다면 완벽하기 그지없는 레슬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정통파로서 이룰 수 있는 업적을 다 이룬 뒤에, 하드코어 계열로 전향을 해서 여러 차례 명승부들을 보여준 것도 참 대단합니다
  • 공국진 2018/11/11 20:20 #

    정통파 시절의 시합도 좋은게 많아서 지금도 간간히 찾아보게 되더군요^^.

    여기서 소개된 츠루타와의 시합도 유튜브에 있으니 나중에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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