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프로레슬러 세계유산 -16. 쵸노 마사히로

일본의 홈페이지 '리얼 라이브'에서 연재 중인 '프로레슬링 세계유산(プロレスラー世界遺産)'의 16번째 글입니다.



과거의 명 선수, 현역 선수 중 주목 선수들을 돌아보는 연재 칼럼인데, 16번째 시간에선 '검은 카리스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쵸노 마사히로를 다뤘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매년 방송되는 '웃으면 안됨' 시리즈의 뺨 때리기 집행자를 시작으로,방송 MC와 애니메이션 응원 대사까지 예능계에서도 폭 넓은 활약을 보여주는 쵸노 마사히로.


그 셀프 프로듀스 능력의 뛰어남은 프로레슬링 인생 속에서 연마된 것이기도 하다.



투혼 삼총사 세 명을 비교했을 때 IWGP 헤비급 타이틀 재위기간과 직접 대결성적에서 밀리는 쵸노지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의 공적을 말하면 무토 케이지와 하시모토 신야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수의 예상을 좋은 의미로 배신한 제1회 G1 클라이맥스의 우승도 그 절대적인 임팩트가 있었기에 올해로 28년이나 계속되는 인기 시리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G1에 필적할 정도로 경제효과를 가져다 준 것이 폭발적인 붐을 일으킨 nWo 저팬이다.


1996년에 미국 WCW에서 악역으로 변신한 헐크 호건이 군단 nWo (뉴 월드 오더) 를 결성했다.


그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젊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넘쳐날 정도의 무브먼트가 일어나자, 같은 시기에 미국 원정을 갔던 쵸노가 이것을 직수입. 일본을 대표하는 악역 군단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당시 TV 중계는 이미 심야로 옮겨졌고, 가끔 방송되던 황금 시간대 특집방송의 주역은 1997년에 프로레슬링계에 입성한 전 유도 세계 챔피언 오가와 나오야였습니다.

그리고 스포츠 신문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기사도 중심이 된 것이 프로레슬링이 아니라 K-1과 힉슨 그레이시였죠.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준비한 앵글이 아닌, 직접 프로듀스를 함으로서 nWo 붐을 일으킨 쵸노의 재능은 다시금 높여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죠." (프로레슬링 라이터)



그 인기의 요인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일본에 있어서 해외 지향의 상승.


1995년에 프로야구팀 로스엔젤레스 다져스에 입단한 노모 히데오의 활약도 있어, 미국에서 일어난 무브먼트에 일본 세력이 더해지는 형태가 된 nWo는 팬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았다.






"집요하게 nWo 가입을 권유받던 무토가 일본에서는 굳건히 거부했지만, 미국에서 그레이트 무타로서 nWo에 가입했습니다.

그런 일본과 미국의 동시 스토리 진행으로 한데 메이저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에 성공했습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또 하나의 인기 비결은 패션성의 뛰어남을 꼽을 수 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의 프로레슬링 팬 관련 상품이라 하면 레슬러의 얼굴 사진과 일러스트가 크게 프린트된 것이었고, 아무래도 부끄러워서 평소엔 입을 수 없어 헐크 호건의 '넘버 1 티셔츠 (一番Tシャツ)'가 히트한 정도였다.


그런데 nWo는 먼서 미국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유행한 '브랜드 상품'으로, 이전까지 프로레슬링 팬이라는 사실에 열등감을 갖고있던 사람들이 nWo라면 당당히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응원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세간에 허가를 받았다는 것으로, 이 사실에 기쁨을 느낀 팬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게다가 nWo 브랜드 파워는 프로레슬링 업계를 너머까지 파급되었다.





프로야구에서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미우라 다이스케, 주니치 드래곤즈의 야마모토 마사, 축구의 나카야마 마사시, 스모의 치요타이카이를 시작으로, 경륜 선수와 오토 레이서 등이 nWo의 검은 티셔츠를 입고 '서포트 멤버'로 나섰다.


이로 인해 폐쇄적이고 매니악했던 프로레슬링 세계가 일반 사회에 관련되게 되었고, 새로운 팬들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덴츠 (*電通. 일본 광고 대리점)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효과가 약 43억엔이라고 했고, 로스 인고베르나블레스 데 하폰은 티셔츠만으로 6억엔의 매상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마이너 장르로 밀려난 프로레슬링이 덴츠의 조사대상이 된 것 만으로도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프로레슬링 라이터)



미국 프로레슬링에 부정적이었던 신일본의 총수 안토니오 이노키도 이것엔 경의를 표했다는 것 같고, 자신은 PRIDE 등의 격투기계에 집착하던 2001년에 쵸노를 신일본 현장감독에 지명했다. 그것도 이런 nWo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이 없다.


한편 본가 미국 nWo는 WCW의 쇠퇴로 2000년경에 자연 소멸. 2002년에는 무대를 WWF로 옮겨 부활했지만, 트러블이 자주 발생해 스토리는 중지하게 되었다.


그보다 앞서 일본에서도 1998년부터 쵸노의 부상에 의한 장기결장으로 무토가 진두에 서게 되자 군단내에 불협화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1999년에 복귀한 쵸노가 새롭게 결성한 'TEAM 2000'에 의해 주역의 자리를 빼았겨 해산을 하는 괴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nWo에서 TEAM 2000으로 브랜드 변경은 그 큰 요인이 WCW와의 계약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에 틀림은 없지만, 동시에 쵸노에 의한 매니지먼트가 빠진 기간에 nWo의 기세가 사라졌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정식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은퇴가 된 현재도 쵸노가 탤런트로서 예능계에서 일정 포지션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재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쵸노 마사히로


1963년 9월 17일, 미국 워싱턴 주 출생.

신장 186cm, 체중 108Kg

특기 기술: 켄카킥, STF, 버터플라이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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