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애니멀 하마구치가 말하는 '국제 프로레슬링이란 무엇인가?' -24. 아수라 하라의 신체능력에 애니멀은 간담이 서늘했다

이번에 번역해 본 칼럼글은 일본의 스포츠 종합잡지 '스폴티바'의 공식 웹 사이트인 'web Sportiva'에서 2017년에 연재를 시작한 '국제 프로레슬링'에 대한 칼럼 제24편입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텐류 겐이치로와의 태그팀 '류겐포'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한 아수라 하라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럭비 국가대표 출신인 그가 국제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해 어떤 활약을 했을지 보시죠.






단련된 몸으로 럭비 일본 국가대표로 이름을 떨치고, 1976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세계 선발 멤버로도 꼽힌 하라 스스무.


30살에 럭비계에서 은퇴하고 국제 프로레슬링의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받으며 입단했다.


링네임 '아수라 하라'는 작가 노사카 아키유키가 지어준 것.


국제 프로레슬링 해산 후에도 전일본 프로레슬링, SWS, WAR에서 활약하고, 텐류 겐이치로와의 태그팀 '류겐포 (龍原砲)'로 프로레슬링계에 한 시대를 갈고 닦았다.


'야생의 덤프가이', '일본산 찰스 로빈슨' 등으로 불린 남자의 본모습을 애니멀 하마구치가 이야기 한다.



*일본산 찰스 로빈슨 아수라 하라 (1)





젊은 시절의 아수라 하라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유도와 스모에 열중하던 하라 스스무는 나가사키 현 이사하야 농업 고등학교 2학년 때 럭비 선수로 전향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두각을 보였다.


그리고 도요대학을 거쳐 긴테츠에 입사했고, 그로부터 1년 후에는 일본 국가대표에 뽑히며 1970년 3월 22일, 도쿄 치치부노미야 럭비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표팀과의 테스트 매치에 출전했다.


당초 포지션은 넘버 8 (*공격수 포지션). 하지만 1971년에 일본에 온 영국 대표팀과의 테스트 매치 (9월 24일. 오사카 긴테츠 하나조에 럭비장 / 9월 28일. 도쿄 치치부노미야 럭비장) 에서 명장 오오니시 테츠노스케 일본 대표팀 감독에게 프롭 (*스크럼을 할 때 기둥이 되는 포지션)으로 포지션 변경을 명받았고, 하라는 강호를 상대로 한 스크럼에서 호각의 싸움을 펼쳤다.


그 후 하라는 당시 182cm, 87Kg이라는 세계 사이드의 강인한 육체와 돌진력을 무기로 삼아 일본 대표팀 부종의 프롭으로 활약. 테스트 매치에 출전한 대표 선수들에게 수여되는 모자는 1976년까지 17번을 얻었다. 그리고 같은 해엔 일본인 선수로서 사상 최초의 럭비 세계 선발팀에도 선출되었다.


하지만 사회인으로서 일과 양립을 해야했고, 럭비 연습을 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1977년에 하라가 긴테츠를 퇴사했을 때 같은 럭비 출신의 그레이트 쿠사츠에게 스카웃받았고, 국제 프로레슬링에 입단하게 되었다.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프로레슬링계에 들어온 거물 신인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을 애니멀 하마구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럭비 일본 국가대표의 프롭이니 스크럼의 최전선에서 몸을 부딫히며 스크럼을 짰겠죠. 게다가 세계 선발에도 선정되었고요. 당시 일본인 선수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죠. 모두 대체 어떤 선수일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달리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랬습니다. 몸이 전혀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80cm가 넘는 거구가 마치 제대로 뿌리를 내린 거목이 대지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스윽 하고 달립니다. 스피드도 있었죠. 충격적이었습니다."



가면 레슬러로서 시합 경험을 쌓은 후, 하라는 1978년 6월 29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 대회에서 맨얼굴로 데뷔했다.


상대를 맡은 테라니시 이사무는 "망가트려도 안됐고, 유약하게 해서도 안됐다. 나름 고생한 시합"이라고 훗날 인터뷰로 말했지만, 결과는 15분 시간초과 무승부. 어떤 상대와도 제대로 시합을 성립시키는 테라니시를 기용했다는 것에 국제 프로레슬링 수뇌진의 노림수를 살펴볼 수 있다.


그로부터 4일 후, 빠르게 캐나다 원정에 출발했고, '파이팅 하라'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하며 겨우 2시합 만에 영국 연방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게다가 서독도 전전한 후 12월에 일본에 돌아왔다. 그리고 귀국한 후 국제 프로레슬링 종무식 때 긴테츠 시절부터 지원을 해온 작가 노사카 아키유키로부터 '아수라 하라'라고 명명 받았다.


국제 프로레슬링의 차세대를 책임질 에이스로 기대받으며 순조롭게 성장하던 하라는 1979년 5월 6일에 밀레 츠르노에게 승리하며 WWU 세계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고, 그 후에도 집시 죠, 다이너마이트 키드에게도 승리하며 타이틀을 사수. 국제 프로레슬링의 빅매치 대회에 참전하던 닉 복윙클, 밴 가니아, 딕 더 브루저 등의 거물 레슬러들과의 싱글 매치도 편성되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