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WWE 전사(前史)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탄생하기까지~ -1. 20세기 이전부터 20세기 초까지

오늘부터 번역해 볼 프로레슬링 글은 번역 설문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WWE 전사(前史)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탄생하기까지~'입니다.


일본의 프로레슬링 무크지 'G SPIRITS'의 39호부터 42호까지 연재한 글로, 1982년에 빈스 맥맨이 WWE의 실권을 쥐기 전까지의 역사를 살펴본 글입니다.


첫 시간은 20세기 이전의 프로레슬링의 역사까지 거슬로 올라갔는데,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나는 현재의 대표 이사 회장겸 최고 경영 책임자 빈스 맥맨이 아버지 빈스 맥맨 시니어에게서 사업을 승계받은 1982년 이후를 'WWE 현대사', 그 이전을 'WWE 전사'라고 정의한다.



WWE가 미국 전국, 전 세계를 투어하게 된 것은 1984년 이후의 일 (당시 단체명은 'WWF'. 2002년 5월에 WWE로 개명). 그 이전까지 미국 동부에서 활동하던 지역 단체였다.


그렇기에 'WWE 전사'는 '동부지구의 프로레슬링 역사'라는 것이 된다.


(주: 동부 지구란 캐나다의 궁격 이남의 메인 주, 뉴햄프셔 주, 버몬트 주, 메사추세츠 주, 로드 아일랜드 주, 코네티컷 주, 뉴욕 주, 뉴저지 주, 펜실베니아 주, 델라웨어 주, 메릴랜드 주, 콜롬비아 특별구를 가리킨다)



이 연재에서는 그 중심도시인 뉴욕, 그리고 장징적 건축물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 (이하 'MSG') 에서 치뤄진 시합을 중심으로 WWE의 '전사'를 살펴본다.


프로레슬링 역사의 중요한 사건 중 다수는 뉴욕, 또는 그 주변에서 일어나왔다. 이것이 현재 WWE가 '세계 최대의 단체'가 된 것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칼라 & 엘보 시대




현 시점에서 알 수 있는 동부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시합 기록은 1844년이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의 시작은 여기가 아니었다.


'레슬링을 생활의 기반으로 하는 사람'을 프로레슬러, '프로레슬러에 의한 레슬링'을 프로레슬링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기원은 1710년대부터 영국에서 시합을 펼친 제임스 피그라는 선수가 된다.


피그는 '근대 복싱의 원조'라 불리는 권투가 본업인 선수지만, 때때로 레슬링 룰로 상금 시합을 치뤘다. 이에따라 그는 이름을 항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프로레슬러다.


이것은 미국이 영국에게서 독립한 1776년 이전의 이야기다.


그 이전, 이후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해온 사람들은 고유의 민속 레슬링도 가져왔다.


19세기 후반 뉴욕의 링 위에서는 칼라 & 엘보, 그레꼬르망, 캐치 애즈 캐치 캔 (CACC) 등 가지각색의 스타일이 개화해있었다.


우선 주류가 된 것이 칼라 & 엘보로, 이것은 유도같이 재킷을 입고 싸우는 서로 붙잡는 격투기다. 영국 민속 레슬링엔 재킷을 입고 싸우는 것이 많았고, 이것이 미국에서 진화한 것이라 여겨진다.


칼라 & 엘보는 착의 격투기로, 그레꼬르망과 CACC는 옷을 벗고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다. 즉, 전술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칼라 & 엘보를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다루는건 그 출신자 중 다수가 그레꼬르망과 CACC의 룰로도 시합을 펼쳤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의 타이틀 매치




프로레슬링 사상 최초의 타이틀이 탄생한 것은 동부 뉴저지 주 뉴아크.


1866년 5월 14일, 미국 칼라 & 엘보 챔피언 결정전으로 제임스 하이람 맥로린이 루이 아인워스를 물리치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초의 흑인 레슬러는 바이로 스몰. 그가 칼라 & 엘보의 링에 출현한 것은 1877년, 동부 버몬트 주 센트오번즈 에서였다.


1865년에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가 해방되어 흑인이 프로레슬링 업계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바이로도 노예 출신으로, 처음엔 복서였다.


칼라 & 엘보는 1880년대 쯤부터 그레꼬르망과 CACC에 밀리기 시작해 선수들도 그쪽으로 생활의 터전을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를 맞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칼라 & 엘보는 소멸했다.




칼라 & 엘보의 시합 모습.

이 스타일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이민해온 민족이 많은 동부 버몬트 주에서 시작되었고, 교회를 통해 널리 퍼졌다.

제1인자인 제임스 하이람 맥롤린은 1901년에 프랭크 곳치 등과 캐나다 크론다이크 지방을 투어하며 시합.

이것이 곳치가 출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대 MSG가 개장




뉴욕 시에 MSG가 생긴건 1874년. 지금의 건물은 4대째다 (1968년부터 사용을 시작).


초대 MSG는 서커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흥행사 피니어스 테일러 바남에 의해 매디슨 스퀘어 (시 소유의 공원) 의 북쪽에 지어졌다. 처음 명칭은 '몬스터 클래식 & 지오로지컬 힛포드롬'.


이것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패트릭 길모어가 빌려 받았을 때 명칭이 '길모어 가든'으로 변경되었다.


길모어 가든에서 열린 최초의 프로레슬링 흥행은 1875년 11월 24일. 그레꼬르망 규칙으로 치뤄진 메인 이벤트에서는 앙드레 크리스톨이 시바운드 바우어에게 승리했다.


패자인 파우어는 1867년에 프랑스 파리에 나타난 사상 최초의 가면 레슬러의 정체다.


그레꼬르망은 '황금의 그리스 로마 시대의 레슬링을 계승한 스타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1865년경, 유럽의 지역 레슬러를 싸우게 하기 위해 파리에서 만들어진 공통룰이다. 타격은 물론이고 하반신에 공격을 하는건 허락되지 않는다.


1879년, 길모어 가든은 오너 변경으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명칭 변경 후 처음 열린 프로레슬링 흥행은 1879년 10월 4일로, 존 맥맨과 윌리엄 밀러가 무승부를 기록했다. 맥맨은 칼라 & 엘보, 밀러는 그레꼬르망이 전문이었지만 이날 어떤 규칙으로 시합이 펼쳐졌는지 판명되지 않았다.


프로레슬링 최초의 세계 타이틀 매치는 1880년 1월 19일. MSG에서 그레꼬르망 규칙으로 치뤄진 시합에서 윌리엄 멀둔이 시바운드 바우어를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프로레슬링 사상 최장시간 시합은 그 다음 MSG에서 치뤄진 3월 24일, 멀둔 vs 윌리엄 밀러의 시합으로, 시합 시작 공이 울린지 9시간 45분만에 레퍼리가 쓰러져 무승부가 되었다.


그레꼬르망의 정상에 오른 멀둔은 CACC의 에드윈 비비 등 다른 스타일의 강호들과도 싸웠지만, 규칙은 그때마다 결정되는 형태였다.


그는 후쿠이 현 출신의 최초의 일본인 프로레슬러 소라키치 마츠다 (본명 '마츠다 코지로') 와도 대결해 승리했다.




초대 MSG의 외관.

당시 미국은 구 종주국인 영국과 사이가 나빴고 '적의 적은 아군'으로서 프랑스와 사이가 좋았다.

1876년에 건국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받았고, 프로레슬링 링 위에서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그레꼬르망형이 주류였다.





벨트를 허리에 감은 그레꼬르망 챔피언 윌리엄 멀둔의 모습.

그는 1887년에 권투 챔피언 존 로렌스 설리반과 이종 격투기전을 치루었고, 은퇴 후에는 뉴욕의 체육관 커미셔너를 맡는 등 동부 격투기계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2대째 MSG 시대




1899년에 MSG가 개축되어 2대째 건물이 되었다.


거기서 펼쳐진 최초의 시합은 1892년 12월 17일. 대진표는 멀둔과 제자인 어네스트 로버의 엑시비션 매치였다.


20세기를 맞이하자 동부 프로레슬링의 주류는 그레꼬르망에서 CACC로 변해갔다. 그레꼬르망과의 차이는 하반신 공격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 랭커셔 지방에서 탄생한 스타일로, 지금의 아마추어 레슬링 자유형의 원형이다.


1905년 5월 4일, MSG에서 죠지 하켄슈미트가 톰 젠킨스를 물리친 시합은 사상 최초의 CACC 규칙으로 치뤄진 세계 챔피언 결정전이다.


하켄슈미트는 유럽 대륙에서 개최된 그레꼬르망 토너먼트를 모두 우승한 후 영국 그레꼬르망 챔피언까지도 쓰러트린 '진정한 유럽 챔피언'이었다.


상대인 젠킨스는 당시의 미국 헤비급 챔피언. 대두되기 시작한 프랭크 곳치의 벽이 되었던 존재다.


유럽과 미국 정상끼리의 대결은 하켄슈미트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까지의 미국 프로레슬링의 중심지는 뉴욕이었다. 하지만 하켄 슈미트 vs 젠킨스가 치뤄진 이듬해 쯤부터 큰 흐름은 중서부가 맡게 되었다.


그 원인은 중서부에 기반을 둔 프랭크 곳치의 활약 때문이었다.


곳치는 1906년에 젠킨스를 물리치고 아메리칸 헤비급 챔피언, 1908년에는 하켄슈미트를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으며, 1913년에 은퇴한 후에는 실권을 잡고 업계를 다루었다.




초대 CACC 세계 챔피언인 죠지 하켄슈미트.

그레꼬르망 출신 레슬러였기에 상반신의 힘이 엄청났다는 사실은 이 사진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11년 9월, 시카고에서 프랭크 곳치에게 패한 리턴 매치가 결과적으로 현역 마지막 시합이 되었다.





난폭한 파이트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에이스를 맡았던 톰 젠킨스.

미국 레슬링계의 패권은 19세기 말부터 멀둔, 그의 제자인 어네스트 로버, 에반 루이스, 곳치의 스승인 파머 번즈, 그리고 젠킨스에게로 옮겨갔다.





프랭크 곳치는 세계 타이틀을 하켄슈미트로부터 미국에 되찾아 온 히어로였다.

하지만 패권을 쥐기 전에는 MSG에서 톰 젠킨스와 싸우고 고배를 마셔 하켄슈미트와의 세계 CACC 타이틀 매치 진출을 저지당한 적도 있었다.




(계속)



*사진출처

구글 (http://www.google.com)


덧글

  • 상한게 2018/07/03 18:19 # 삭제 답글

    시합시간이 9시간 45분이라니... 10시간 동안 서로 서있는거도 정말 기적적일텐데 심판이 쓰러져 무승부라니 그건 또 무슨 룰인가 싶기도 하네요(...)
  • 공국진 2018/07/03 18:58 #

    말 그대로 끝장을 보는 승부였던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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