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후미 사이토의 프로레슬링 강좌별책 레전드 100 -제97화. 나이스 가이의 '반칙사(反則死)'. 크리스 벤와

이번에 번역한 글은 일본의 프로레슬링 라이터로 미국 프로레슬링계에 능통한 후미 사이토주간 SPA!에 연재 중인 '후미 사이토의 프로레슬링 강좌별책 레전드 100'의 98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본편 97번째 시간으로 캐나다 출신의 실력자였지만 최악의 형태로 삶을 마친 크리스 벤와에 대해 다뤘는데,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후미 사이토의 프로레슬링 강좌별책 레전드 100' 제97화는 '크리스 벤와. 나이스 가이의 '반칙사(反則死)'' 편

(일러스트레이션: Toshiki Urushidate)




석세스 스토리와 너무나도 슬픈 최후, 프로레슬러의 천국과 지옥을 살았던 슈퍼 스타였다.



크리스 벤와는 12살 때 '마음의 스승'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만나 프로레슬러가 될 것을 결심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로레슬링 여행을 계속했고, 18년이 걸려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에 도달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홈 타운인 캐나다 에드먼턴에서는 중학생 때부터 언제나 링 사이드 좌석에서 키드의 시합을 뚫어지듯 지켜봤다.


키드와 데이비 보이 스미스가 삭발을 했을 땐 크리스도 곧장 머리를 삭발했다.


키드가 면도날같은 날카로운 느낌의 레슬링, 스피드감, 말 그대로 폭탄같은 끈기와 정신에 완전히 전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리스를 놀라게 한 것은 키드가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을 정도의 체격이라는 사실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9월 신학기 때는 미식축구, 겨울엔 아이스 하키, 봄엔 육상 경기, 여름엔 야구로 1년 내내 스포츠로 땀을 흘렸다.


눈이 많이 내리는 에드먼턴에서는 하키 선수가 학교의 스타였다.


아마추어 레슬링도 하고 싶었지만, 크리스가 다니던 고등학교엔 아마추어 레슬링 팀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의 YMCA의 레슬링 교실에 다녔다. 하루라도 빨리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기에 대학엔 진학하지 않았다.



크리스는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캘거리의 스튜 하트의 지하실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신장 5피트 8과 1/2인치 (약 174cm), 체중 180파운드 (약 82Kg)의 체격은 프로레슬러를 지망하는 젊은이로서 상당히 작은 편이었으나, 스튜는 크리스의 눈을 보고 곧바로 입문을 허가했다.


'던전'에서 실제로 크리스에게 레슬링을 가르친 코치는 일본인 레슬러 미스터 히토 (아다치 카츠지)와 하트 형제들인 브루스 하트, 키스 하트, 브렛 하트, 하트 가문에서 홈 스테이를 하던 데이비 보이 스미스라는 굉장한 멤버들이었다.



19살 때 캘거리에서 데뷔했지만, 고향 선배 레슬러인 배드뉴스 알렌 (Badnews Allen) 의 소개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프로레슬링 유학'을 가게 되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동경하던 키드와 초대 타이거 마스크가 명승부를 펼치던 링이었기에 크리스는 어떻게해서든 일본 프로레슬링과 도장 생활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도쿄 세타가야 구의 합숙소에서 반년 동안 살면서 다른 연습생들과 함께 찬코 (*일본에서 스모 선수, 프로레슬러 등이 먹는 냄비 요리.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들은 숙사에서 찬코를 만들어 먹는 일이 많음) 를 먹고 몸을 키웠다.


일본에서의 데뷔전은 훗날 판크라스를 설립하는 후나키 마사하루 (현재는 '후나키 마사카츠') 와의 싱글매치였다 (1987년 1월 2일. 도쿄 고라쿠엔 홀).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크리스에게 다이너마이트 크리스라는 링네임을 주었지만, 크리스는 이것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미숙하다는 아주 금욕적인 이유에서였다.



캘거리와 일본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크리스는 쥬신 썬더 라이거의 라이벌로서 가면 레슬러인 '페가수스 키드'로 변신했다.


라이거와의 싸움에서 가면이 벗겨진 후에는 '와일드 페가수스'로 개명.


'TOP OF SUPER Jr.' 리그전 (1993년), 'SUPER J-CUP 토너먼트' (1994년), 'BEST OF THE SUPER Jr.' 리그전 (1995년) 에서 우승해 일본에서 주니어 헤비급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섰다.


일본의 음식은 거의 다 먹을 수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용 '체중유지 음식'으로서 마음에 들어했던건 흰 쌀밥과 두부였다.


길거리에서 소고기 덮밥 체인점에 들어가 밥과 두부만을 주문하자 옆자리의 할머니가 "돈이 없는거야? 가엾게도"라며 1천엔을 주었다는 이상한 에피소드도 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부킹으로 유럽, 멕시코으로 원정을 가고, 유럽에서는 1도시 장기 체류형 토너먼트 대회, 멕시코에서는 미국 스타일과도 일본 스타일과도 다른 루챠 리브레를 경험했다.



ECW 프로듀서인 폴 헤이먼이 "제발 좀 와주게. 자넨 천재야"라고 매일같이 전화를 걸게 되었고, '신일본의 외국인 선수' 블랙 타이거 (에디 게레로), 딘 말렌코와 함께 ECW 하드코어 공간을 엿보기로 했다.


캘거리의 '스탬피드 레슬링'은 이 시점에서 이미 활동을 정지하고 있었다.


ECW 아레나에서는 크리스의 일본 스타일 프로레슬링을 모두가 무조건으로 존경했다. ECW 레귤러 그룹이 되자, WCW가 크리스, 에디, 딘 3명에게 전속 계약 요청을 해왔다 (1995년).


두터운 계약서에 기재된 계약연봉은 그전까지 본 적 없는 금액이었다. 미국의 레슬링 정치적인 면의 어두운면을 처음 목격한건 이 WCW의 계약서에 싸인한 후였다.



크리스에게 준비된 것은 '대회 전반부 출전'이라는 정위치였다.


락커룸 안에서는 몇가지 정치적 파벌이 있었고, 헐크 호건과 케빈 내쉬의 그룹, 스팅과 렉스 루거의 그룹, 릭 플레어와 그 동료들이란 식으로 프로레슬러로서의 타입도, 주의와 주장도, 이해관계도 다른 복수의 그룹이 기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WCW와 WWE가 매주 월요일 밤의 TV 쇼 '먼데이 나이트로'와 '먼데이 나잇 로우'가 시청률을 다투던 시대였다.



약 4년 동안 속했던 WCW에서 가장 귀중한 체험은 브렛 하트와의 싱글매치가 실현된 것이었다 (1999년 5월 23일.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켄퍼 아레나).


이 시합을 치루기 5개월 전, 브렛의 동생인 오웬이 그 경기장에서 불행한 사로고 세상을 떠났다. 브렛은 천국의 오웬에게 바치는 메모리얼 매치의 대결 상대로 크리스를 지명했다.


두 사람은 오웬이 지켜보는 링에서 캘거리 스타일의 프로레슬링으로 대결했다.


브렛은 그로부터 3개월 후 링과 이별을 고했고, 크리스는 에디, 딘 등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WWE로 이적하는걸 결의했다.



크리스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링에 서있었다.


레슬매니아 제1회 대회가 개최될 때, 크리스는 캘거리의 하트 가문의 '던전'에서 얇은 매트만이 깔린 콘크리트 바닥 위에 얼굴을 문지르며 레슬링 연습에 전념하고 있었다.


레슬매니아 20의 메인 이벤트는 트리플 H vs 크리스 vs 숀 마이클스의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 '트리플 스렛'이었다 (2004년 3월 14일. 뉴욕).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영상이 '빨리 감기'로 크리스의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다.


크리스는 이 시합의 모든 장면, 모든 동작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링 한 가운데에서 트리플 H에게 크리플러 크로스 페이스를 걸었다.


트리플 H가 오른손으로 링 바닥을 4번 내려치며 항복 의사를 밝혔다. 시합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렸다. 여기서 시간이 멈췄다.


경기장 천정에서 은색 종이 테이프가 날아들었다. 링에 양 무릎을 꿇은 크리스는 레퍼리가 넘겨준 황금색 챔피언 벨트를 바라봤고, 그 후 그 벨트를 확실하게 가슴에 안았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같았다. 제목은 분명히 '트림스 컴 트루'일 것이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프로레슬링이 영원의 to be continued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크리스의 스토리엔 이 다음이 있었다.



크리스, 아내 낸시 씨, 7살의 아들 다니엘 군 3명이 조지아 주 페이욧테 군의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은 2007년 6월 25일 (현지시각) 오후 2시 30분경이었다.


다음날 26일, 페이욧테 군 보안당국이 기자회견을 열고 시체 발견 때의 상황에서 사건이 '이중 살인, 자살 사건'으로 단정했고, 크리스가 냇시 씨와 다니엘 군을 살해하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대체 무엇이 크리스를 그렇게나 몰아붙였던 것인지는 지금와선 아무도 알 수 없다. 크리스 안에선 뭔가가 부서지고 끊어졌을 것이다.


크리스는 금요일 밤, 낸시 씨를 교살하고, 토요일 아침에 다니엘 군을 질식사시키고, 토요일 심야부터 일요일 아침에 걸쳐 자택 지하실의 웨이트 룸에서 훈련 기구에 로프를 걸고 목을 매어 직접 목숨을 끊었다.


'동반 자살(心中)'이라는 일본어에는 어딘가 로맨틱한 구원의 느낌이 감춰져있지만, 미국 영어로는 '더블 수어사이드 (이중 자살)'이라는 표현이 된다.


'동반 자살'이라는 생각 방식이 없고, 그런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느낌이 좋은 나이스 가이였던 크리스는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를 남기고 어느 날, 여행을 떠나버렸다.




*프로필: 크리스 벤와(Chris Benoit)


1967년 5월 21일, 캐나다 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애드먼턴에서 자람.

1986년 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데뷔. 같은 해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유학.

1994년, 제1회 'SUPER J-CUP' 우승.

IWGP 주니어 헤비급 타이틀, WCW 세계 헤비급 타이틀, 세계 헤비급 타이틀 (WWE 로우판) 을 차지.

특기 기술은 크리플러 크로스 페이스, 다이빙 헤드벗.

2007년 6월 24일에 사망. 향년 40세.




*원문 & 사진출처: https://nikkan-spa.jp/1484247


덧글

  • 2018/06/13 20: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6/13 22: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상한게 2018/06/13 21:36 # 삭제 답글

    그렇게 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그 최후 때문에 모든 것이 흑역사가 되어버렸죠...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말려들게 한 것 때문에 앞으로도 재평가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 공국진 2018/06/13 22:12 #

    정말 왜 그랬는지 안타깝고 의문이 들고 복잡한 감정입니다...
  • 2018/06/14 07:1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공국진 2018/06/14 08:32 #

    아; 그런 사건이 일어났었군요.....

    말씀대로 벤와의 죽음은 프로레슬링의 그런 어두운 면들을 표면에 보이게 한 것 같기도 합니다...
  • 강상 2018/06/14 12:43 # 삭제 답글

    벤와는 이제 북미에서는 그 이름조차 언급되는 것이 금기시될 정도로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하던데, 역시나 업적과 기량이 대단했던 사람이라 이 시리즈에서 다루어지는군요...

    언젠가 데이브 멜처는 '이 비틀린 업계가 만들어낸 끔찍한 비극'의 인물이 벤와라는 식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훌륭한 기량의 소유자였음에도 빅맨들의 입지가 강했던 북미의 레슬링 업계에선 수시로 찬밥 대우를 받았고, 그 때문에 몸을 혹사하는 경기 방식과 근육을 키우고 통증을 억제하고자 다량의 약물을 투여받는 나날의 연속이 결국 벤와라는 인간을 재앙으로 몰고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 공국진 2018/06/14 13:03 #

    악순환이었군요...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6/15 12:26 # 답글

    제리코가 벤와의 비극을 복합적인 칵테일처럼 뒤섞여졌다고 말했듯이... 빅맨이 아닌 것에 따른 차별과 푸대접, 약물 문제, 몸을 혹사한 경기(다이빙 헤드벗과 뇌 문제), 친구들의 죽음(에디, 그런지, 오웬, 필먼 등) 등. 비극이 날 수 밖에 없었지만, 그의 잘못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래도 2004년 레슬매니아 20에서 에디와 벤와가 안기며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는데.

    2005년과 2007년에는.... 울적해지네요.
  • 공국진 2018/06/15 19:14 #

    레슬매니아 20의 메인 이벤트 후 모습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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