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프로레슬링 해체신서 29 - '처음이자 마지막인 직접 대결. 이노키가 보여준 마에다에 대한 마음 씀씀이'

일본의 홈페이지 '리얼 라이브'에서 연재 중인 칼럼 '프로레슬링 해체신서(プロレス解体新書)'의 스물아홉번째 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1983년에 신일본에서 펼쳐진 안토니오 이노키와 마에다 아키라의 싱글매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어떤 내용일지 보시죠.






신일본 프로레슬링 vs UWF의 싸움으로 인한 세대교체 중에, 팬들이 바랬으나 마지막까지 실현되지 못했던 안토니오 이노키와 마에다 아키라의 싱글매치.


유일한 두 사람의 직접 대결은 마에다가 해외 무사수행에서 개선 귀국했던 신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합에서 이노키는 의외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과거 자이언트 바바는 "그녀석은 대전상대를 못써먹게 만들어 버리니까 곤란해"라고 안토니오 이노키에 대해 쓴소리를 헀다고 한다.


"바바가 보기에 전일본의 톱 외국인 선수였던 압둘라 더 부쳐를 빼가서 단기간만에 다 써먹고 무너트린 신일본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있었겠죠." (스포츠지 기자)



그렇지만 '육성의 이노키'로서의 일면도 놓칠 수 없다.



눈에 띄는 피니쉬 기술이 없었던 타이거 제트 싱에게 브레인 버스터를 전수해주었을 뿐 아니라, 실제 시합에서 이노키 자신이 직접 실험대가 되어준 것이 그 예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스턴 한센과 헐크 호건 등 다듬어지지 않은 무명 선수를 메인 이벤터로까지 키워주었기에 바바의 말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


"그 한편으론 합이 잘 맞지않는 상대와 필요없는 선수에 대해선 질릴 정도로 냉담한 취급을 한 적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스포츠지 기자)




국제 프로레슬링 등에서 활약한 옥스 베이커는 국제 프로레슬링에서 괴기파 톱 악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신일본에 참전하자 이노키는 첫 싱글 대결에서 연수베기에 이은 레그 드롭으로 3카운트를 따내기까지 겨우 3분도 걸리지 않고 시합을 끝냈고 베이커에겐 활약할 장면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이 시합은 TV 생방송이었고, 앞선 시합이 길어저 남은 방송 시간이 얼마 남지않게되자 그 안에 끝내기 위한 처리라고 알려졌다.


그렇지만 당시 시합 중계 도중 중계가 끝나는 흐름은 자주 있었고, 무리하게 시간 안에 결판을 낼 필요도 없었다.


실적이 있는 베이커에 대한 이런 취급은 역시 '너무하다'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신일본 소속 선수에 대해서도 이노키의 이런 차별적인 취급을 볼 수 있다.


"초슈 리키에겐 싱글매치에서 핀 폴패를 내준 이노키지만, 후지나미 타츠미에겐 태그매치에서의 핀 폴패만 내줬고 싱글매치는 시간초과 무승부까지만 기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후계자 후보로 보여졌지만, 이노키의 마음 속에선 명확하게 격이 나뉘어져 있던걸 엿볼 수 있죠." (프로레슬링 라이터)



그럼 마찬가지로 이노키의 후계자로 보여지던 마에다 아키라에 대해선 어떠했을까?


UWF군으로서 신일본에 참전한 이후엔 이노키 vs 마에다의 싱글매치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이건 훗날 이노키의 은퇴시합에서 오가와 나오야와의 대결이 실현되지 않은 것과 닮은 의미로 생각됩니다.

마지막 시합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아무리 팬들의 기대가 컸다고 해도 오가와와 싸울 순 없었습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즉, 은퇴하는 자신이 장래가 유명한 오가와에게 이기는 짓은 할 수 없다'라는 이노키의 아끼는 마음에 의해 두 사람의 대결이 편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에다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 당시 흥행에서의 관객 동원수와 TV 시청률을 생각하면 아직 이노키가 정상에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마에다와 싸운다면 이노키가 이겨야 했지만 그렇게하면 마에다의 경력에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이전부터 '이노키가 마에다를 겁내서 대결을 피했다'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마에다는 그 복잡헀던 사정의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의 시합에서도 공세에 나서기 전에 '해버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링 사이드의 세컨드에게 물어봤고, 시합 도중 돌발사고로 후지나미가 엄청난 출혈을 하게된 싱글매치에서도 일부러 더블 KO로 빨리 시합을 끝냈습니다.

또, 이노키에 대한 도전자 결정전에서도 후지와라 요시아키에게 승리를 양보했던 것처럼, 오히려 스토리에 충실한 선수였고 그것이 이노키와의 시합에서만 태도가 바뀔거라고 생각하긴 힘듭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유일하게 치뤄진 이노키 vs 마에다의 싱글매치를 보면 이노키가 얼마나 마에다를 소중히 여겼는지 엿볼 수 있다.


1983년 5월 27일, 타카마츠 시민 회관에서 치뤄진 IWGP 결승 리그전.


일본인 선수로 초슈, 후지나미, 단체 넘버 2였던 사카구치 세이지가 모두 참가한 리그전에서 마에다는 특례적인 '유럽 대표' 자격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싱글매치 연전에서는 선수에 따라 육체적인 데미지가 크고, 절대적인 에이스인 이노키로서는 신예인 마에다가 상대인 지방대회에서의 시합이 되면 가볍게 넘겨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합에서 이노키는 당시의 마에다가 무기로 삼던 '다채로운 스플렉스'에 이은 닐 킥까지 특기 기술을 전부 받아주었다.


"이노키가 져먼 스플렉스와 드래곤 스플렉스를 받아준 것 자체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에다의 능력을 높이 사고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프로레슬링 라이터)



피니쉬도 일어서면서 연수베기라는 기습적인 기술이었고, 그 점에서도 마에다가 되도록 (이미지에) 상처입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상대를 망가트릴 뿐만이 아닌 '지도자'로서의 이노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이것도 일종의 명승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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